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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ecember 16, 2010
1609년 9월, 스페인령 필리핀의 임시총독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돈 로드리고 일행 373명을 태운 범선 산프란시스코호가 멕시코(당시 스페인령)로 향하던 도중, 폭풍을 만나 온주쿠(御宿) 앞바다에 좌초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온주쿠 사람들이 처음 보는 이국의 조난자들을 구출하고 헌신적으로 돌본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과 멕시코의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1978년 8월에는 오타키마치(大多喜町)가 쿠에르나바카시(모렐로스주), 온주쿠마치가 아카풀코시(게레로주)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고 같은 해 11월에는 호세 로페즈 포르티요 대통령이 지바현을 찾았습니다.
오는 2009년에는 400주년을 기념하여 멕시코 대사관, 지바현, 온주쿠마치, 오타키마치 등과 협력하여 다양한 기념사업을 실시하여 이 역사적 사실을 전국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돈 로드리고 상륙지
(온주쿠마치 이와와다 해안)

산프란시스코호(1/50모형 온주쿠 역사자료관 소장)
1609년 9월, 한 척의 갈레온선이 폭풍을 만나 조난당하여 지바현 온주쿠 앞바다에 좌초하게 되었고, 수많은 승무원들이 온주쿠마치 이와와다 해안에 표류했다. 배는 필리핀 임시총독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돈 로드리고 일행 373명을 태우고,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스페인령 멕시코)를 향하던 중이었다.
56명이 사망하고 남은 317명도 추위와 공포에 떨던 중, 이를 목격한 온주쿠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헌신적인 구호활동을 펼쳤다. 따뜻한 의복을 입히고, 음식도 아낌없이 내주었다. (돈 로드리고 일본견문록) 또한, 해녀들은 자신의 체온으로 조난자를 따뜻하게 감싸, 추위로부터 구조해 주었다고 한다. 며칠 뒤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찾아온 오타키 성주 혼다 다다토모(本多忠朝)는 유럽식으로 로드리고의 손에 키스를 하고 그들을 성으로 초대해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 그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다다토모의 소개로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秀忠)와 슨푸(駿府)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만나 또 한 번 파격적인 대우로 환영받는다. 이 때 로드리고는 이에야스에게 스페인 선교사의 보호, 펠리페 왕국과의 친선, 네덜란드인의 추방을 요청했다. 이에야스는 네덜란드인 추방을 제외하고는 로드리고의 요청을 들어주며 은 정련 기술자를 파견해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그 취지를 기록한 주인장(쇼군의 주인(朱印)이 찍힌 공문서) 까지 적어 그에게 전달했다. 로드리고는 에도, 교토, 오사카 등을 둘러보고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크게 감명받았으며 이를 견문록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약 1년 뒤 1610년 8월, 일행은 막부에 고용된 윌리엄 아담스가 이에야스의 명을 받아 만든 배를 타고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으로 돌아갔다. 산부에나벤투라(행운)호라 명명된 이 배에는 상인인 다나카 쇼스케(田中勝助)를 비롯한 23명의 일본인도 승선해 있었다.
다음해 스페인 국왕의 명을 받아 돈 로드리고의 조난구조와 파격적인 환대에 대한 답례와 유럽의 항해사들 사이에 일본의 근해에 존재한다고 전해지던 금은섬의 탐험을 목적으로, 비스카이노를 대표로 하는 답례선이 도착했다. 이들은 이에야스를 알현하고 일본연안을 측정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곤궁에 처하게 된다. 이즈음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인들이 금은섬을 찾아 일본을 침략하려고 한다고 스페인인들을 모함했고 이를 전해들은 이에야스의 태도는 그 후 점점 차가워졌다. 곤란에 빠져 있던 비스카이노 일행에게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그들과 하세쿠라 쓰네나가(支倉常長)를 비롯한 다테 마사무네의 가신들과 상인을 태운 일본배, 이른바 「게이초(慶長) 유럽파견 사절」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가 기독교를 전국적으로 금지하게 되면서, 이후 돈 로드리고 조난 사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되었고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온주쿠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메이지 초기, 조약 개정의 교섭 타진을 위해 구미를 순방한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 등이 이 일화를 알게 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돈 로드리고의「일본견문록」을 처음으로 번역한 무라카미 나오지로(村上直次郎)는 「이와와다(岩和田)는 일본 무역 사상 잊을 수 없는 땅」이라 말하고 있다. 1928년 10월, 돈 로드리고 일행이 표류했던 해안 부근의 높은 언덕에 지상 17.5미터의 콘크리트제의 탑이 완성되었다. 앞면에는 도쿠가와가와 관련된 도쿠가와 후작의 문자가, 옆면에는 스페인 국왕의 친필, 멕시코 대통령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1978년 11월 호세 로페즈 포르티요 대통령이 온주쿠마치를 방문했다. 대통령은「에르마노!(형제여!)」라고 말을 걸며 젊은이들이 짊어진 신여 위에서 히노마루 부채를 펼쳐들고 노래를 선창했다. 이후로도 온주쿠, 오타키와 멕시코, 아카풀코시와의 활발한 교류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멕시코 정부에서는 「일본에서 맞는 멕시코의 여름 2009」를 비롯한 일멕교류 400년을 기념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있으며, 지바현에서도 멕시코에 거주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구로누마 유리코(黒沼ユリ子)가 기획한「오페라 유즈루(夕鶴)」공연 등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2005년 4월, 일본 멕시코 경제제휴협정(EPA)이 발효되었다. 돌이켜보면 400년전 지바현 온주쿠마치 이와와다의 해변에, 멕시코의 가레온선이 표류하면서 조난을 당한 로드리고 일행을 온주쿠 주민들이 헌신적으로 돌보면서 시작되었던 일본과 멕시코의 교류 역사, 이에야스가 바랬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던 일멕 교역의 꿈이 이곳에서 드디어 그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은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만, 몇 백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고 다시 환하게 타오르게 된 이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멕시코에도 커다란 감동을 주고 있다. 또한, 대사관이 발행한 「조약에서 조약으로」에도 자세히 나타나 있다.


돈 로드리고 일본견문록
(무라카미 나오지로 번역 유쇼도 출판)